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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기/미국 생활

나의 미국회사 적응기 (4)

by 런던아빠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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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Layoff)를 목격하다.

 

어느 날, 부서장이 전 직원을 회의실로 불렀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 둘이 보이질 않는다. 당연히 휴가를 갔겠거니 생각했는데 부서장이 담담하게, 두 사람을 해고했다고 말한다.

 

잠깐, 방금 뭐라고?

 

분명 엊그제까지 함께 어울리고 일을 하던 직원들이었다. 업무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은 인터뷰 때 이 팀이 잡 시큐리티(직업 안정성)가 훌륭한 팀이라고 했던 사람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스파르타? 이것이 바로 미국이다!

 

다른 부서는 더 많은 사람이 잘려나갔다고 한다. 우리 팀은 운이 좋은 거라고.

 

미국은 이직이 용이한 반면 쉽게 잘린다. 왜 미국에 왔을까 잠시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MBA에 가다

 

오랫동안 MBA를 가야 하나 고민을 했다.

 

당연히 엄청난 비용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미국 MBA를 가는 방법은 회사를 그만두고 가는 방법뿐. 학비와 생활비, 포기하는 연봉의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차일피일 고민하는 것마저 미루고 있었다.

 

84년 동안 MBA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우..

 

그러나 미국에 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를 다니며 MBA를 할 수 있으니 비용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던 것. 고민할 것 없이 플로리다에서 가장 좋은 학교인 플로리다 대학 (University of Florida) 경영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플로리다 대학의 상징인 악어. UF 졸업생들을 악어라는 뜻으로 게이터(Gator)라 부른다.

 

1년 반 과정에 학비는 43,000불(약 5천만 원). 큰 금액이지만 회사에서 1만 불을 지원해줬다. 큰 돈이 들어갔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력서에 한 줄 올리는 것은 물론, 많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영어가 많이 늘었다.

 

UF 경영대학원이 있는 Haugh Hall.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50명 중 나만 유일한 동양인이자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거의가 백인이었던 것. 게다가 이 인간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당최 알아듣지를 못했다. 남부 사투리가 심한 데다 대화의 90%가 슬랭, 거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스포츠 얘기만 하니 더더욱 영어가 소음으로 들렸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블라 블라로 들렸다.

 

다행히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친한 친구들도 생기고 팀 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경영학 전공인 내게 MBA에서 배우는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알던 지식을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좀 더 깊게 파고드는 정도랄까? 그러나 실제로 협상을 연습하는 협상 수업이나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 수업, 스타트업 수업 등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이 죄다 백인이다 보니 백인들과 좀 더 잘 지낼 수 있게 된 것도 덤이었다.

 

친구들이 만들어준 가짜 졸업장. 내용이 가관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마리의 게이터(Gator)가 되었다.

 

졸업 후 같은 사무실의 UF 출신 직원 하나가 이제야 진정한 게이터가 되었다고 축하해주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학연인가?

 

미국에서는 학연 지연 안 따질 것 같지만 미국인들은 의외로 자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졸업한 학교 로고가 새겨진 번호판을 차에 달고 다닐 정도니까.

 

UF 번호판. 번호판을 판 돈은 장학재단 기금 마련에 쓰인다고 한다.

 

MBA는 더 이상 높은 연봉과 더 많은 기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얼마 전 해고된 직원도 MBA였고, 우리 팀 직원 중 절반 이상이 MBA였으니까. 너무 흔해서 MBA는 더 이상 가치가 없고 그저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력서의 MBA 한 줄이, 은퇴를 1년만 미뤄줄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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